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우슈비츠-비르케나우 절멸수용소 (문단 편집) == 폐쇄와 해방 == || [youtube(6AQ3iORB0m4)] || || 해방 직후 소련군에 의해 촬영된 아우슈비츠 내부의 참상. 시체가 장난 아니게 많이 나오니 주의 바람. || 1943년 11월 라인하르트 작전이 중지됨에 따라 이 작전의 일부로서 세워졌던 절멸 수용소들은 [[마이다네크 강제수용소]]를 제외하곤 모두 폐쇄되었다. 하지만 이 작전으로 세워진 것이 아닌 아우슈비츠는 여전히 나치 최대의 절멸 수용소로서 학살을 자행했고, 다른 지역의 학살 시설이 줄어들어 유대인들이 이곳으로 밀려들자 이들을 수용소에 도착하는 즉시 학살했다. 1944년 말 소련군의 당도가 너무나 확실해졌을 때 마이다네크 절멸 수용소와 다시 문을 열었던 [[헤움노 절멸수용소]]도 폐쇄되었지만, 오로지 아우슈비츠-비르케나우에서는 학살이 계속되었고 1945년 초 [[비스와-오데르 대공세]]로 이미 바르샤바까지 소련군에게 함락되었던 1월 17일에야 힘러는 이 수용소에 폐쇄명령을 내렸다. 이때까지 살아남은 제소자들은 그 추운 겨울에 도보로 이동해야 했으며 이 과정에서 이미 극도로 쇠약했던 많은 유대인들이 사망했다. 제소자들을 모두 이동시킨 뒤 SS는 조직적으로 수용소의 시설을 파괴하려 했지만 이미 소련군이 너무 가까이 와 있었기에 제3 수용소와 비르케나우 수용소의 건물만을 파괴하는 데 성공했고 비르케나우의 터, 그리고 제1 수용소는 그대로 남아 학살의 물증이 되었다. 수용소가 폐쇄된 지 불과 9일 뒤인 1월 26일 소련군은 이 지옥을 해방했다. 그리고 이 수용소 참상을 본 소련군들도 경악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